한국은 지난 20년간 저출생 극복을 위해 약 70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1명을 넘지 못하는 초저출생 국가로 남아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0명으로 2023년의 역대 최저치 0.72명보다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출산율 정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불평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단일 평균치가 아니라 집단별 출산 가능성의 분포와 그 불평등 정도에서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는 ‘정상 부모’가 되기 위한 경제적·사회적 기준을 점차 엄격하게 설정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계층은 출산에서 배제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구조적 우생학’으로 명명하며, 출산이 소수의 특권으로 제한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출산율 통계는 부유층과 대기업 노동자에게 출산 기회가 집중된 현실을 보여준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복지패널 자료에 따르면, 계약 기간 1년 이상의 상용직 여성 출산율은 임시직이나 일용직 여성보다 4배 높다. 대기업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 역시 중소기업 여성의 4배 수준이다. 육아휴직도 소수 대기업에 편중돼 300인 이상 사업장에 재직 중인 노동자 중 아버지 육아휴직 사용자의 67.9%, 어머니 사용자의 57.7%가 이곳에 집중돼 있다.
이 교수는 주거 환경, 사교육 지원, 문화 경험 등 양육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이 출산 선택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은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경제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이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따라서 정부가 현금 수당 중심의 개별 가정 지원에 머무르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본다. 대신 3세 미만 아동에 대한 보편적 보육 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이고, 한부모 및 취약 계층 아동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또한 현재 가족 정책이 혼인이라는 전제에 의존해 설계된 점도 문제로 꼽힌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해 정책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처럼 법적으로 생활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교육과 노동 정책 또한 학생 개개인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내 ‘구조적 우생학’ 개념에 대해 일부에서는 ‘더 우수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우수함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며, 해당 구조는 다양성을 축소시키고 좁은 기준에 맞춘 인구를 선별한다는 점을 경고한다. 이는 사회의 인지적·경험적 다양성 상실로 이어져,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인구가 부족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 교수는 생태계의 단일 종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특정 집단에만 인구 재생산이 집중되면 전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저출생 문제의 해결은 단순 출산 장려 정책을 넘어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